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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꾸기가 두려운 20대들에게, 30대에 명함 10개를 가진 방송인이 전하는 글 -두번째 명함 대통령실 인턴 / 아나쁘지않아운서 준비 볼께요
    카테고리 없음 2020. 2. 21. 15:55

    회사에 근무하는 1년 3개월간 하루에 수십번씩 사표를 쓰면서 살았다. 일요일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상상에 빠져 밤을 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 번 내 손안에 들어온 것은 그것이 무엇이라도 놓기 어려운 것인지 양손에 쥐고 있던 것을 놓기가 무척 어려웠다. 2009년 8월 퇴사를 결심하고 일기를 썼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서 실천하지 못했는데 내 어리칠로 일기에 1년 전에 쓴 일기가 현실에 되는 순간이 마침내 왔다. 명함을 내밀 때만큼은 정화로 기뻤던 회사를 그만두려고 하면 사실 이 순간도 겁이 난다. 꿈을 찾고싶다고 회사를 그만두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난 그래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나도 어쩔수 없나봐..1년 후 2년 후 3년 후 10년 후...내 미래를 여기서 찾지 못하면 떠나는 게 옳을 것이다. 1년 이상 해왔던 마음이니까 섣부른 충동은 아니다. 더 이상 회사이름 그 목소리에 나를 숨기는 비겁하고 바보같은 사람은 되지 말자. 그냥 나 스스로 블링블링하게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고 지금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거야.회사를 그만두면 흘릴 얘기가 많을 줄 알았는데 별로 없네. 이 1년간 많이 힘들어서 그만두고 때는 욕에서 나올 지경이었지만.www. 그만해라고 하면 고마운 마음이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못하는 경험도 많이 했으니까. "나에게 일생일생의 기회를 줬고, 그 때문에 많이 있던 나를 닦을 수 있는 기회를 준 회사에 정말 감사하다.그래도 회사의 생할을 낭비한 것은 아닌지,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주고, 아쉬워해 줘서 고맙고, 이제 사무실에서 부끄럽게 눈물을 흘렸다. 먼 훗날 회고했을 때 가장 최근의 이 순간을 고맙게 생각하게 되기를 기원할께. 무서운!신지 은 파이팅을 외치세요!2010.6.20


    두번째 명함을 소개하기 위하여 2009년 입사한 내 첫 회사 삼성을 그만두고 그때 유행하던 싸이 월드 다이어리에 쓴 일기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정예기 고마운 가끔 물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가장 절실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지과인 고과라 느끼는 거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과인서적인 노력과 회사를 다니면서 그것은 예의롭고 끈기있게 지냈던 때를 비교해 보면 오히려 회사에 다닐 때가 더 열심히 노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꿈, 방송을 하겠다는 그 꿈이 나와는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커지고 동시에 더 열이 나는 이유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대한민국 최고의 작은 기업에서의 첫 해 반은 역시 길게 보면 정예기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유가 있는 최고를 느낀 적도 있었다. 복리후생 이과 직원의 교육에 대한 재투자는 어느 작은 기업도 아직 경험한 적이 없어 체계적으로 일하거나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첫 회사라 거기서 배운 게 아직도 도움이 된다는 건 사실이었다. 물론 그 시스템이라는 것이 없는 곳에서 일을 할 때는 시스템이 배가 되기도 하지만,


    회사에 다니는 동안 나의 일과는 살인적이었다. 8시 출근, 5시 퇴근. 일주일에 한번 점심 때 약속 있다고 핑계를 대고 근처 학원습관실에서 혼자 스터디를 했고, 한 자리 퇴근 때 정확하게 학원 스터디룸으로 직행했습니다. 1주일에 2개씩 혼자 글도 썼다. 메인 스토리에는 학원 심화반 수강을 하면서 실력을 갈고 닦았지만 실력이 쉽게 늘지 않았다. 답답했어요. 그렇게 6개월을 보냈을까. 휴가를 낸 경제방송 앵커 겸 기자에 합격했어요. 일주일이라는 느낌 끝에 동파에 더 도전해 보자는 의견이 나와 입사를 포기했습니다. 어느 정도 지나친 말 소음에 시달리고 보면 그 후 1주일도 괴로워했던 것이 요즘도 알 수 있다. 어쨌든 회사를 더 다니면서 사내방송인 아과인서에 지원해 합격했고, 서초사옥에 있는 삼성그룹 본사에서 당시 커뮤니케이션팀 제일기획 등 훌륭한 선배들과 일하는 사치(?)도 누렸으니 그것 또한 사인의 운명이었다는 의견을 돌이켜보면 알 수 있다. 일요일마다 계속된 느낌 끝에 26살 되던 해 여름 교루스토리 일년 반을 통과한 점 회사에 당당하게 사표를 냈다.


    사원증을 반납하고 쓰던 노트북을 반납하고 함께 처음을 한 선배들에게 눈곱을 돌렸더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아찔한 퇴근날. 사옥에서 눈물을 참던 나는 마침내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눈물을 흘렸다. 인사팀 면담에서 그랬다. 요즘 이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다고. 삼성보다 좋은 회사를 찾기란 쉽지 않다고. 별의별 내용이 다 떠올랐다. 적이 제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한동안 강남역을 찾기가 두려웠다. 강남역에 가면 삼성 사옥이 보이기 때문이다. 퇴근 후 하나주초가 지나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낮에 첫출동이라 night에 잠들기 전까지 하루종일 첫스터디에 매달렸다. 뉴스 원고를 읽으면서 발소리가 나지 않아 뉴스 원고를 찢기도 했고 방송이란 게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첫 번째인지 확신도 사라지는 소리이다. 정부는 당신들이 무모하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겁이 났다. 그리고 그만큼 풍속에 더 매달릴 시간이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열심히 무언가에 몰두했던 시기인지도 모른다.  잠자코 있는 것이 답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도 그 수다. 무방안 방송국 시험에 도전해 보려고 채용정보 사이트를 정독하던 중 대통령실 인턴 모집 광고를 봤다. 사실 거기 가고 싶다기보다는 여기 가서 면접 풍속이나 하자는 생각에 지원한 곳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서류전형에 합격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였다.


    평생 아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청와대 면접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 같았습니다. 내가 지원한 정책홍보실 면접자 중에는 미스코리아도 있었고 외국 명문대 출신도 있었다.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아과인 은서가 꿈인데 왜 이곳에 왔느냐는 질문에 더 큰 세상을 보고 경험한다면 방송인으로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한 것 같다. 며칠 뒤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아 기대도 하지 않았던 청와대 인턴에게 허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나의 두 번째 명함을 선물해 준 곳, 그곳은 우리 과인라 최고의 행정기관, 대통령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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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실인턴후기는다른글을써두었으니이링크지를참조해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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